김룡사(문경)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김용길 372
김룡사는, 운달산김룡사사적서에 따르면, 신라 진평왕 10년(588) 운달 조사가 개선하여 사명을 운봉사라 하였다고 되어 있다. 따라서 본래의 절 이름인 운봉사라 사명이 조선시대 후기까지도 그대로 사용되었다고 생각되는 것은 사중에 전해지는 괘불화기에도 운봉사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룡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지금의 김룡사가 큰절의 초창은 인조2년에 수행 공덕으로 고명했던 혜총선사가 제자들과 힘을 모아 이룩하였으며 그 후 소실된 것을 의윤, 무진,대휴의 세분 대사가 옛모습을 되살려 놓아 번창시에는 48동에 건평 1,188평이나 되었으나 현재는 대소 전각 30여 채가 남아있다. 험상한 모습의 사천왕 신장상이 방문객을 압도하고 대웅전을 위시한 고색 창연한 전각들이 그 옛날의 창성을 말해주고 있다. 그 중에서도 경흥 강원 건물은 국내 최대 강원건물의 하나로 300명을 동시에 수용 할 수 있는 온돌방으로서 그 부엌아궁이는 어린 학생들이 걸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크다. 인조 27년 설잠대사가 조성한 대웅전의 불상은 그 규모가 웅대하며 기예 또한 현묘하고 성균대사가 만든 후불 탱화가 유명하다. 고종26년에 사증대사가 조성한 거대한 쾌불탱화를 비롯한 죽은 사람의 생,전사가 기록 영화처럼 비쳐진다는 거울 등 수많은 문화유산을 소장하였으며 석탑과 석상을 절뒤에 세운것은 그 선익을 진압한다는 뜻이며 혹은 산혈의 촉맥을 보우하는 뜻이라 한다. 김용사에서 특이한 것은 절 입구에 지은 지 300여년 된 해우소 (근심을 해소시키는 장소라는 의미의 화장실) 가 있는데 토속적인 목조 건물로 꼭 한번 확인하기를 권하는 특별한 장소다.* 운봉사에서 김룡사가 된 이야기 *김룡사의 사명은 원래 운봉사였는데 김룡사로 바뀐 연유는 여러 가지로 전해지고 있으나, 그 중에서 가장 믿을 만한 것은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 죄를 지어 이곳 운봉사 아래에 피신하여 숨어 살면서 신녀가를 만나 매양 지극한 정성으로 불전에 참회하더니 한 아들을 낳아 이름을 용이라 하였다. 그 이후부터 가운이 크게 부유해져 사람들은 그를 김장자라 하였고, 이로 인하여 동리 이름 또한 김룡리라 하였으며, 운봉사 역시 김룡사로 개칭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 절은 최소한 18세기 이후 김룡사란 이름으로 되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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