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선조의 14명 아들 중 유일하게 정비인 인목왕후가 낳은 아들로 선조의 특별한 총애를 받았던 영창대군의 묘이다. 유영경 등 소북파의 지지로 이미 세자로 책봉된 광해군 대신에 세자에 책봉될 가능성도 있었으나 선조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실현되지 못하였다. 광해군 즉위 후 이이첨 등 대북파에 의해 왕위에 위협을 주는 인물로 미움을 받았다. 박응서 등 7명의 서출들이 역모를 꾸몄다는 ‘7서의 옥’이 일어났는데, 이들로 하여금 영창대군 추대 음모를 거짓 진술케 하였다. 이 결과 영창대군은 서인으로 강등되어 강화도에 유배되었다가 강화부사가 방안에 가두고 장작불을 지펴 그 열기로 죽게 하였다. 1623년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반정으로 관작이 복구되었다. 조선 시대 왕실의 무덤은 능, 원, 묘로 구별되는데 묘란 일반적인 무덤을 가리키는 말로 왕의 자손이나 후궁, 왕의 아버지인 대원군 등의 무덤을 뜻한다. 영창대군 묘소는 원래 광주군 남한산성 아래에 있었는데 성남시 개발계획에 따라 1971년 8월에 현 위치로 이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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