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시열 글쓴바위는 보길도 선백도마을 앞 바닷가의 암벽을 말한다. 이곳은 선조에서 숙종조의 대유학자인 우암 송시열이 왕세자 책봉문제로 관직이 삭탈되고 제주 유배길에 올라 경치가 좋은 이곳에서 잠시 쉬며 임금에 대한 서운함과 그리움을 시로 새기어 바위에 새겨놓은 것이다. 지역에서는 우암 송시열 글씐바위라고 부른다.[여든세살 늙은 몸이 만경창파를 해치며 바다를 가는구나......] 자신의 외로운 처지를 시로 표현하여 바위에 새겨놓았다. 이후 우암의 후학인 임관주라는 사람이 1707년 같은 바닷길로 유배를 가다 이곳에 들러 [동국의]라는 오언 절구를 남겨 오늘에 전하고 있다. 주차장에서 송시열 암각시문 이정표에서 산책하듯 약 300m 숲 터널길을 5분~10분 정도 걸어가면 탁 트인 바다와 암벽을 만난다. 이 암벽에 서서 노구의 선비는 자신의 절절한 마음을 써 내려갔을 것이다. 송시열이 바라보았던 글쓴바위 인근 푸른 바다 위에는 지금은 전복 양식장이 펼쳐져 있어 이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풍경을 선사한다.八十三歲翁(팔십삼세옹) 83세 늙은 이몸이蒼波萬里中(창파만리중) 거칠고 먼 바닷길을 가노라一言胡大罪(일언호대죄) 한마디 말이 어째 큰 죄가 되어三黜亦云窮(삼출역운궁) 3번이나 쫓겨가니 신세가 궁하구나北極空瞻日(북극공첨일) 북녘 하늘 해를 바라보며南溟但信風(남명단신풍) 남쪽바다 믿고 가느니 바람뿐이네貂裘舊恩在(초구구은재) 초구에 옛 효종의 은혜 서려 있어感激泣孤衷(감격읍고충) 감격한 외로운 속마음 눈물 지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