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차산 봉수대지는 함경도와 강원도 방면에서 남산 제1봉수로 연결되는 제1봉수의 말단으로 양주의 한이산에서 봉수를 받아 목멱산 (남산) 제1봉수로 전달해 주던 곳이다. 봉수는 대개 수십 리의 일정한 거리마다 후방의 요지가 되는 산꼭대기에 봉수대를 설치하고 밤에는 횃불, 낮에는 연기로써 외적이 침입하거나 난리가 일어났을 때에 나라의 위급한 소식을 중앙에 전달하던 제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봉수제가 시행되었던 것으로 추측되나 본격적인 국가제도로 확립된 것은 고려시대로 조선시대까지 이어져 세종 때에 체계적인 봉수제가 확립되어 전국적인 봉수망이 정비되었다. 이후 1894년 봉수제도가 전화통신체제로 바뀌게 되면서 봉수제도는 폐지되었다. 조선 시대의 문헌에 아차산 주봉에서 북쪽으로 벗어난 능선의 서쪽 봉우리에 있다고 표시되어 있어, 이곳이 아차산 봉수대터임이 밝혀졌고 터만 남아있던 것을 서울정도 600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1994년 복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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