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한산도 이충무공 유적
경상남도 통영시 한산면 한산일주로 70
한산도의 이충무공 유적지는 통영시 한산면 두억리 제승당 일원에 조성된 건물, 비석, 동산문화재 광장, 조경물 등과 풍치림야를 통칭한다.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이 본영을 설치하고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의 직무를 수행하던 곳으로 1963년 1월 21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라좌수사로 있던 이충무공은 좌수영 함대를 이끌고 그해(1592) 5월 4일 1차 출동하여 옥포, 합포, 적진포해전에서 대승하고, 5월 29일의 2차 출동에서 적의 주력함대를 궤멸시킨다. 이어 7월 4일 제3차 출동에서 세계 해전사에 빛나는 한산대첩(7월 8일)을 승리로 이끌었다.한산대첩으로 조선 수군은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하여 왜군의 소위 [수륙병진작전]은 수포가 되게 된다. 이어 8월 24일의 제4차 출동에서는 부산포에 집결해 있는 일본함대 100여 척을 격파하는 대승을 거둔다. 이에 선조는 1593년 8월에 이충무공에게 당시 편제에도 없던 삼도수군통제사를 제수하고 경상, 전라, 충청 삼도의 수군을 통괄 지휘하게 하는데, 이 무렵 이충무공은 한산도에 진영을 옮기고 장기전에 대비한다. 한산도 두억개에 터를 고르고 진영을 설치하기를 정유년(1597) 2월 26일 파직되어 서울로 압송되기까지 3년 7개월 동안 하였는데, 운주당을 비롯한 각종 공해, 창고와 부대 시설이 어느 정도의 규모로 어떻게 건립되었는지는 문헌상 명확한 기록이 없어 확인할 수는 없다. 현재 난중일기와 시조 및 한시 등이 전하는데 그중에서도 한산도에서 어느 날 밤 달을 보며 읊었던 [한산섬 달밝은 밤에]가 유명하다.정유재란으로 한산 진영이 불타버리고 폐허가 된 지 142년만인 영조 15년 (1739) 조경 제107대 통제사가 이곳에 유허비를 세우고 운주당 옛터에 예대로 집을 짓고, 제승당이라는 친필현판을 걸었다. 그 후 영조 30년(1760) 이충무공의 후손 이태상제121대 통제사가 낡은 건물을 중수하면서 유허비를 손질하고 비각을 뒤로 옮겨 세웠다. 그로부터 117년 뒤인 고종 14년(1877) 공의 10세손 이규석 제198대 통제사가 제승당유허비를 새로 다듬어 세우고 옛비는 그 옆에 묻어 두었는데 최근에 다시 발굴하여 2기를 함께 보존하고 있다. 건양 원년(1896) 통제영이 혁파되고 뒤이어 주권을 일제에 빼앗기게 되자 지방 유림에서 제승당을 관리하였으나 재원 조달이 어려워 점점 퇴락하여 가고 있었다. 이에 통영 군민들은 제승당의 퇴락을 두고 볼 수 없다 하여 1932년 3월 15일 [한산도제승당중건기성회]를 창립하고 모금 운동을 벌이는 한편, 한산도민들은 따로 [모충계]를 결성하여 [충무영당] 건립과 충무공 영정 봉안을 추진하여 1933년 6월 2일 [한산도 제승당 준공식]과 [충무공영정 봉안식]을 동시 거행하기에 이르렀다. 40 여 년 후 1976년 국가 예산을 투입하여 대대적인 정화 사업을 벌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곳 유적지에는 충무사, 제승당, 수루, 한산정 등 당우를 비롯하여 유허비 2기, 한글유허비 1기, 통제사송덕비 7기, 비각 5동과 5개문(내삼문, 외삼문, 홍살문, 충무문, 대첩문), 기타 부속건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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