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강이 흘러가는 동구 불로동 일대 야산에 200여기의 고분군이 있다. 불로동은 왕건이 동수전투(일명 : 공산전투)에서 패하여 도주하다 이 지역에 이르자 어른들은 피난가고 어린아이들만이 남아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 불로동 고분들은 삼국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옛날 이 지역을 다스렸던 토착지배세력의 집단묘지로 추정된다.
대구 도심에서 동북쪽으로 22km 떨어진 팔공산 남쪽 기슭에 신라 소지왕 15년(493년)에 극달화상이 세운 절로, 그때 이름은 유가사였으나, 흥덕왕 7년(832년)에 심지왕사가 다시 세울 때 겨울철인데도 경내에 오동나무가 활짝 피었다고 해서 동화사라 이름을 고쳐 불렀다고 한다. 절 입구는 수목이 우거져 있고 사철 맑은 물이 폭포를 이루며 흐른다.
사람이 가장 쾌적하게 느끼는 고도는 해발 700m이고, 팔공산 케이블카의 정상역은 800m로 쾌적한 높이이다. 울창한 소나무 숲 팔공산에서 뿜어 나오는 신선한 피톤치드 공기를 마시면서 대구 시가지와 팔공산의 웅장한 모습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또한, 산의 기를 느낄 수 있는 휴양지이다.
금호강이 흘러가는 동구 불로동 일대 야산에 200여기의 고분군이 있다. 불로동은 왕건이 동수전투(일명 : 공산전투)에서 패하여 도주하다 이 지역에 이르자 어른들은 피난가고 어린아이들만이 남아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 불로동 고분들은 삼국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옛날 이 지역을 다스렸던 토착지배세력의 집단묘지로 추정된다.
사람이 가장 쾌적하게 느끼는 고도는 해발 700m이고, 팔공산 케이블카의 정상역은 800m로 쾌적한 높이이다. 울창한 소나무 숲 팔공산에서 뿜어 나오는 신선한 피톤치드 공기를 마시면서 대구 시가지와 팔공산의 웅장한 모습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또한, 산의 기를 느낄 수 있는 휴양지이다.
대구 도심에서 동북쪽으로 22km 떨어진 팔공산 남쪽 기슭에 신라 소지왕 15년(493년)에 극달화상이 세운 절로, 그때 이름은 유가사였으나, 흥덕왕 7년(832년)에 심지왕사가 다시 세울 때 겨울철인데도 경내에 오동나무가 활짝 피었다고 해서 동화사라 이름을 고쳐 불렀다고 한다. 절 입구는 수목이 우거져 있고 사철 맑은 물이 폭포를 이루며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