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는 임금을 지키는 충신 아산(雅山) 이상철(李相喆)아산(雅山) 이상철(李相喆)은 1870년(고종 7)에 생원시에 합격하여, 1875년(고종 12)에 대원군이 중국 보정(保定)으로 축출되자, 1874년(고종 11)에 유생들과 대원군 청환(請還)을 상소하였다가 갑산(甲山)으로 유배되었다. 6년 후 충청도 황간으로 배소를 옮겼으며 4년 후 용서받고 유배에서 돌아와 경북 칠곡 매원리에 살았다. 후손들이 아산(雅山) 이상철(李相喆)을 추모하기 위하여 재실 아산재(雅山齋)를 건립하였다.아산재는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매원2리에 위치하고 있는데, 1935년에 매원(梅阮) 산두산(山斗山)에 건립한 것을 현 위치로 이건하였다고 전한다. 아산재를 들어서면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기와담장과 징검돌이 한 눈에 들어온다. 징검돌을 한 칸 한 칸 디디며 기와담장을 지나면, 대나무 숲의 바람소리와 나무 사이로 날아다니며 지저귀는 새들의 소리를 벗 삼아 사색할 수 있는 넓은 마당이 나온다. 중앙마루를 중심으로 좌우협간에 온돌방이 있고, 문을 올리면 중앙마루와 방이 연장되어 문을 다 열고 있으면 하늘아래 누워있는 듯 한 한국 가옥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자연석 기단위에 사다리형 주초석을 놓아 기둥을 세운 소로수장형 아산재는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로 지붕은 골기와로 팔작지붕을 이었다. 평면구성은 중앙의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1칸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挾室形)인데, 전면에는 반칸 규모의 툇간마루를 설치하였다. 자연석 기단 위에 사다리형 주초석을 놓고 기둥을 세운 소로수장형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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